작년 이맘때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봤습니다. 그때 당시 그냥저냥 재밌게 봤죠.
말이 참 우스운데 딱 그 정도 감상이었습니다. '그냥저냥' 그러다 며칠 지나고 영화 속의 장면과 대사가 계속 떠오르더군요. 지금까지도 오래 곱씹을 만큼 말입니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영화 속 해준의 대사입니다. 이 대사 하나가 이유가 되어서 점점 영화가 좋아졌습니다. 많이 공감이 되는 대사였거든요. 당시 그냥저냥 봤던 영화는 내 기억 속에서 무르익어서 어느덧 작년에 본 가장 좋은 영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시 곱씹으니 박찬욱의 영화 중에 가장 좋은 영화가 되었고, 이내 제가 본 한국 영화 중 가장 좋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헤어질 결심'이 생각나 말러의 교향곡 5번을 들었습니다. 교향곡을 하나를 통째로 들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어도 피아노 위주의 소곡을 들었을 뿐이었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모든 악장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백미인 4악장에서 다시 영화의 색과 냄새를 기억해보기도 하구요.
처음 재즈에 관심을 갖던 때, 좋아하는 연주자를 통으로 듣거나, 앨범을 정해 곱씹던 때처럼 클래식도 공부를 하며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설렌 맘으로 앨범을 꺼내보던 호기심을 갖은 채 말입니다. 살다 보면 마음이 너무 말라 흙내가 나곤 합니다. 좋은 음악을 찾아 듣는다는 게 마음에 물을 주는 일과 같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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